[비즈한국] 지난달 14일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린 스웨덴과 튀니지의 월드컵 F조 조별예선 1차전 경기. 스웨덴이 튀니지를 4-1로 앞서던 후반, 교체 투입된 마티아스 스반베리가 그라운드를 밟은 지 18초 만에 첫 터치로 골을 넣었다. 월드컵 역사상 두 번째로 빠른 교체 선수 골이었다.
그런데 부심의 깃발이 올라갔다. 카메라 앵글로는 프리킥을 그가 직접 받은 것처럼 보였고, 그렇다면 명백한 오프사이드였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스웨덴의 공격수 알렉산데르 이사크의 발끝을 스친 뒤 스반베리에게 공이 간 것으로 확인되면서 결국 골로 인정됐다.
이 미세한 접촉을 잡아낸 것은 바로 축구공 안에 심어진 센서였다. 초당 500번 공의 움직임을 읽는 이 칩이 이사크의 발끝에 닿는 찰나의 미세한 움직임의 변화를 감지한 것이다.
지난 2022년 카타르 월드컵부터 공식 적용된 이 센서는 독일 뮌헨공대생들이 개발했다.

손으로 적던 기록, 센서로 바꾸다
이야기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뮌헨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올리버 트린체라와 알렉산더 휘텐브링크는 FC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인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에 경기를 보러갔다가 ‘불편한 장면’을 목격했다. 선수들의 패스횟수, 슈팅횟수 등 경기력 자료를 구단 직원들이 경기를 보면서 직접 손으로 적고 있었던 것. 21세기에, 그것도 독일에서 아직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트린체라는 “독일처럼 첨단 기술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은 낮에는 박사논문을 쓰고, 밤에는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그렇게 2012년 키넥슨(KINEXON)이라는 스타트업이 세상에 나왔다.

애초 시작부터 센서에 공에 넣을 생각은 아니었다. 이들이 처음 구상한 건 선수 쪽이었다. 조끼나 반바지 허리춤에 넣는 작은 센서로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잡아내는 것이다. 센서는 초광대역(UWB) 신호로 선수가 그라운드 어디에 있는지를 10cm 이하 정밀도로 추적하고, 가속도계로 얼마나 빠르게 달리고, 멈추고, 방향을 트는지를 읽는다.
이렇게 모인 이동 거리, 최고 속도, 스프린트 횟수, 가·감속, 점프 같은 데이터로 선수의 부하를 관리해 부상을 막고, 감에 의존하던 컨디션 판단을 숫자로 바꾸는 것이다.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가 정말 제 기량을 회복했는지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
키넥슨은 2015년 분데스리가 FC 아우크스부르크와 손잡고 첫 실시간 선수 추적 솔루션을 선보였다. 출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솔루션은 경기장 위 데이터를 100% 실시간으로 잡아냈지만, 정작 현장의 코치와 분석가들은 이 데이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키넥슨은 기술을 파는 동시에 그 기술을 쓰는 법까지 오랜 시간 가르쳐야 했다. 기술이 시장을 앞질러 간 초기 스타트업이 흔히 겪는 일이기도 했다.
돌파구는 뜻밖에도 대서양 너머에서 열렸다. 2016년 키넥슨은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라이브 데이터에 대한 미국프로농구(NBA)의 관심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처음엔 10여 개 팀과 시작했던 것이 현재는 NBA 구단의 약 80%가 키넥슨의 기술을 쓰고 있다. 독일 뮌헨의 작은 스타트업이 미국 프로농구의 데이터 인프라를 사실상 장악한 셈이다.
선수의 몸에서 공 안으로
선수의 몸에 붙어 있던 센서가 공으로 옮겨간 건 2018년이다. 당시 키넥슨은 분데스리가 공인구 공급사인 데르비스타(Derbystar)와 손잡고 센서를 내장한 첫 커넥티드 볼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로 공인구에 위치·모션 센서를 넣은 시도였다.
공에 들어간 센서는 초당 500번, 공의 속도와 회전,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 접촉이 일어났는가’를 잡아낸다. 이 데이터는 안테나를 거쳐 서버로 전송돼 100분의 1초 만에 판정에 쓸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된다.
이 센서 볼은 그해 포르투갈 리그의 강등 플레이오프에 처음으로 공식 투입됐다. 이듬해 키넥슨은 국제축구연맹(FIFA)과 라이브 트래킹 분야 협력을 맺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공인구 ‘알 릴라’, 올해 공인구인 ‘트리온다’에 센서를 심게 된다.
특수 카메라 없이, 방송 화면만으로
키넥슨 외에도 선수들의 데이터를 판독하거나 오프사이드 등을 가려내는 다양한 기술을 가진 유럽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2016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한 스타트업 스킬코너(SkillCorner)는 경기장에 특수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고, TV 방송 중계영상만으로 선수와 공의 움직임을 데이터로 뽑아낸다.

이번 월드컵에서 쓰이는 반자동 오프사이드 기술(SAOT)은 10여 대의 특수 카메라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이를 위해 48개국 선수 1248명을 전신 스캔해야 하는 데다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반면 스킬코너의 기술은 방송 중계 영상만으로도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예산이 빠듯한 구단에서도 활용할 여지가 있다. 스킬코너에 따르면 현재 180개 이상의 대회, 300개 이상의 조직이 이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2020년 설립된 레스포비전(ReSpo.Vision)도 스킬코너와 같은 방송 영상 기반 접근을 쓰되,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회사는 단일 카메라로 찍힌 평면 중계영상에서 선수 한 명당 50개 이상의 신체 포인트를 뽑아내 센티미터 단위 정확도로 3D로 복원한다.
이 기술은 판정을 가리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선수의 3D 움직임을 복원하면, 팬이 특정 선수의 시점에서 골 장면을 다시 볼 수 있는 ‘디지털 트윈’ 중계도 가능해진다.

레스포비전은 이미 FIFA의 데이터 품질 인증을 획득했고, 2024년 코파아메리카, 폴란드·덴마크 축구협회 등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420만 유로를 유치했는데, 투자자 명단에 폴란드 국가대표 수비수 얀 베드나레크가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스노우플레이크 공동창업자 마르친 주코프스키, 자율주행 스타트업 웨이브 공동창업자 아마르 샤 같은 딥테크 인사들도 투자자로 참여했다.
월드컵은 전 세계의 축제다. 하지만 축구라는 스포츠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유럽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리그도, 가장 치열한 전술 경쟁도, 그 경쟁이 남긴 방대한 경기 데이터도 유럽에 몰려 있다. 축구를 숫자로 읽어내려는 시도가 유럽에서 유독 활발한 이유다.
공 안의 센서를 만든 뮌헨의 키넥슨, 방송 화면만으로 선수를 데이터로 바꾸는 파리의 스킬코너와 바르샤바의 레스포비전이 그 최전선에 있다. 다음 월드컵의 그라운드를 바꿀 이름도 지금 유럽 어느 도시의 작은 사무실에서 쓰이고 있을 것이다.
필자 이정우는 17년간 언론사 기자로 자동차, 2차전지, 중공업 등 주요 산업을 비롯해 국방, 외교, 환경, 교육,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담당했다. 특히 모빌리티 및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성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123팩토리’의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